[뉴스인] 김효헌  = 스코틀랜드 토피 헨 에서 동쪽으로 약 1 마일 떨어진 고요한 바스 게이트 언덕에는 한국 전쟁 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이곳에는 110 개의 한국산 전나무와 전사한 군인을 대표하는 약 1100개의 스코틀랜드 수목이 있다. 2000 년 6 월 20 일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한 한국 전쟁 기념관인 이곳은 내년이면 70 주년을 맞는다.

영국은 한국전 당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파병을 했다. 한국전쟁 기간 중 총 81,084명의 영국군이 참전하였다. 그 중 1,106명의 영국군 장병들이 산화하였으며 3천여 명이 부상당했고 1,060명이 포로의 고초를 겪었다.

 

 

지난달 5월 18일(토) 스코틀랜드 바스게이트(Bathgate) 지역에 위치한 한국전쟁기념관에서 한국전 참전기념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에는 박은하 주 영국대사가 방문하여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존경을 표하는 헌화식에 참석하였다. 대사는 헌화 행사 후 스코틀랜드 지역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오찬행사를 실시하고,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 의무 및 용기에 대한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달하였다.

 

이제 한국전쟁도 내년이면 벌써 70주년을 맞이한다. 70년의 세월이 말해 주듯이 이제 영국에 참전 용사로 살아 계시는 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의 한국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데 큰 공헌을 한 영국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오늘날의 상황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1950년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젊은 청년들은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고 있고 대신 직업 군인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영국 군인들을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에 무한한 감사를 표할 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당신 나이는 10대에서 20대전후의 젊은 영국군인들, 한국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나라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스코틀랜드에서 참전용의 대표로 있는 91 세의 아담 맥켄지 (Adam McKenzie)를 만났다.

아담 맥켄지 (Adam McKenzie)는 스코틀랜드의 Argyll and Sutherland Highlander연대에서 한국전쟁에 참여게 되었다.

다음은 아담 맥켄지와의 대화 내용이다.

Q. 전쟁 기념관이 한국의 전통약식으로 건립이 되어 있는데 누구에 의해서 건립이 되었나?

현재의 기념관은 전통적인 한국디자인을 토대로 한 것이다. 전통적인 기와지붕은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 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1명의 기술자가 왔을 때 연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뒷주머니에서 망치를 하나 보이면서 이게 연장이라고 했다. 그 기술자는 오직 망치로 어떤 나사나 시멘트 없이 6톤의 건물을 완성했다. 그리고 건립은 순수 참전 용사들의 힘에 의해서 건립이 되었다. 한국에는 전혀 말을 하지도 않았으며, 단 1파운드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이 기념관은 전쟁 중에 목숨을 바친 영국군인 1,089명을 기록한 유일한 한국전쟁기념관이다.

Q. 언제 한국에 도착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1950년 7월에 도착 했다. 한국전에 파견한 최초의 영국군의 일원이었다. 나는 1946년 군에 입대를 했다 그 당시에는 한국처럼 국방의 의무로 군에 입대하여 마침 홍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 간다고 하였다. 그때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이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출발하기 전에 한쪽 팔에 4번 다른 팔에 3번 총 7번의 주사를 맞고 4일간의 항해 후에 아침 9시에서 10경에 부산에 도착했다. 도착 후에 바로 북한군 방어선인 낙동강으로 이동해서 저녁에 도착했다. 그 당시 강에는 다리가 없어서 수영을 잘하는 대장이 강을 건너 임시로 다리를 만들어 건넜을 때 친구가 북한군의 총격을 받았고 내가 그를 병무실로 끌고 가서 살아났다. 그 당시 아무도 그에게 일어난 일을 알지 못했고 60세 생일에 그 친구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Q. 기억에 남는 전투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

1950년 9월 23일 282전투에서 미국의 계획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전투다. 그때 미군 비행기가 실수로 Naplam(폭팔물)을 영국군 부대인 Argyll 부대에 떨어뜨려서 스코틀랜드 군인 90명 이상이 단 15분 이내에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3000명의 북한군을 체포한 일이다.

Q. 한국에는 방문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또 방문하고 싶지는 않는가?

7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다. 1950년 7월초에 처음 도착한 때와 지금의 변화에 매우 놀라웠다. 나는 부산 유엔공동묘지에 호환을 세우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다시 방문하고는 싶지만 다시 방문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고 비행시간도 너무 길어서 가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282고지’를 방문하고 싶다. 처음 방문 했을 때는 모든 일정이 정해져 있었고 따로 시간을 내기가 힘이 들었다. 지금 282고지의 생존자는 오직 5명뿐이다.

Q. 지금 참전 용사들이 몇 명 정도 살아 계시는가?

지금 스코틀랜드에 생존하고 있는 참전 용사들은 40명 정도 생존 하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70주년이 된다. 세월이 많이 가서 이제 생존자가 몇 명 되지 않는다.

 

91세의 노장 아담 맥켄지 (Adam McKenzie) 만나기 위해 전화를 했다. 당신의 삶을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반겨 주면서 어떤 복장을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군복을 입고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막상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긴장이 되었다. 약속시간 15분전에 주차장에 도착하는데 바로 앞 차에 군복을 입을 노 신사분이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군복을 입고 차에서 내리는데 먼저 가서 인사를 했다. 91세의 나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정하시고 허리도 반듯 하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메달도 가지고 와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셨다. 정말 젊은 나이에 한국이 어디이지도 모르고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 도중에 눈물을 보이시는 적도 있었다. 필자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아서 깊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세월이 가도 그 상황을 잊을 수는 없는 것이고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힘들어 하시는 것이 역력 했다. 지금이야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당시 10대 후반의 나이로 낮선 이국땅에서 전쟁을 실제로 겪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눈물이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계신 것 같았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이렇게 건제한 것은 아담과 같은 스코틀랜드의 군인들의 희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아담에게 한국을 대표해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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