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마을 주민들이 선물로 전해주려 한 닭 세 마리. (사진=EWB)

[뉴스인] 이다영 = 지난 11월 부르키나파소 출장 중 홍보영상 촬영차 부쎄(Boussé)의 한 마을에 갔다. 국경없는교육가회(EWB)가 개입한지 6년 정도 된 마을이다. 이번 방문에도 어김없이 마을 주민들은 달걀을 선물로 줬다.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는 우리에게 부리나케 뛰어오며 원래는 닭을 주고 싶었지만 한국인들이 닭과 함께 차를 타는 게 무섭다 하니 달걀이라도 전해주는 거라 했다.

이들은 감사의 표시로 닭을 선물할 때 산 채로 전달한다. 두 다리가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닭을 받아 한 시간가량 울퉁불퉁한 도로를 함께 달려 수도 와가두구로 돌아가야 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그들의 생계수단이 되는 닭과 달걀을 받아도 되나 싶은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었다. 그래도 매번 마을을 찾아올 때마다 감사하다며 표현하는 마음을 거절하면 더 상처가 될까 받아와버렸다. 다음부터는 안주셔도 된다고 한 마디 덧붙였지만 말이다.

뿌리칠 수 없는 닭 선물 전달식 (사진=이다영)

부르키나파소에서 1년간 현장 코디네이터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인터뷰를 할 때도 매번 닭을 주시기에 “우리에게 뭐가 그렇게 고맙다고 자꾸 닭을 주시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은 한결같이 “많은 것들이 고맙고 모든 게 고맙다”여서 그저 겉치레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이번 부르키나파소 출장 때 마을별 교육사업 관리자 공동협의회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삶에서 느낀 변화들을 얘기하셨다. 광명시 평생교육원과 함께 부르키나파소 시골 주민(성인 여성)들에게 글과 셈을 가르쳐 온지 벌써 3~4년이 되다보니 삶에서 느끼는 변화가 많아진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변화란 우리네 삶에선 당연한 일들이지만 이제야 눈을 뜨고 새 삶을 살게 되는 일이다.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는 보보디울라소 보투마을의 문해교육 참여자 (사진=EWB)

주민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할 수 있고 짧게나마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무리 글을 아는 어르신이라도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모르던 부르키나파소의 아주머니들이 아들 이름을 휴대폰에 저장할 수 있게 되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휴대폰으로 계산하는 것도 큰 변화다.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는데 손님들에게 정확히 가격을 알려줄 수 있고 물건을 팔아 얻는 수익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일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적어놓고 가격을 예상하고 구매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글쓰기 수업에 열중한 사바(Saaba) 지역 문해교육센터 여성들 (사진=EWB)

6-7년 전부터 문해교육을 받았던 일부 주민들은 소액대출을 받아 돈벌이가 되는 작은 활동들을 하는데, 이제는 비교적 큰 숫자도 정리하는 가계부의 달인들이 됐다. 매번 마을에 가서 “가계부 보여주세요. 안가져 오셨으면 집에 가서 들고 오셔요” 하고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쓴 가계부를 보여주겠다고 먼저 내미는 모습을 보면 더 뿌듯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없다. 비록 필기하고 셈하는 것이 여전히 느릴지라도 꾹꾹 펜을 눌러 적는 모습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의가 넘친다.

글과 셈, 기술을 가지면 이들은 더 큰 사람이 된다. 그저 살아남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에이즈 감염 여성들에게도 글을 알고 숫자를 아는 기회가 주어지니 약을 제때 알맞게 복용하고 의사와의 시간약속도 지키는 건강한 삶의 주체로 서게 되었다.

소액대출을 받아 닭을 기르고 있는 주민들이 양계기술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하고 있다. (사진=EWB)

농촌 여성들은 이제 농사가 안 돼도 그저 보릿고개를 넘겨야 하는 삶을 벗어나 가족들을 굶기지 않는다. 아이들이 집안일을 조금 덜 돕더라도 학교에 가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하는 한 집안의 어른이 된다. 지난날엔 남편이 돈을 못 벌어오면 부부싸움밖에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나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여성’으로 당당하게 선다.

마을에서 모든 일의 손과 발이 되는 여성들이 변화하니 마을 남성들과 어르신들도 함께 변화한다. 배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일은 온데간데없이 옛날 일이 되었다. 마을에 생기가 돌고 성장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런 구체적인 이야기를 말로 설명하라고 하면 주민들은 너무나 어려워한다. 하지만 배웠기에 마을이 달라지고 살맛이 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렇기에 수줍은 마음을 담아 전해주는 닭, 달걀, 땅콩은 내게는 이제 다른 곳의 닭, 달걀, 땅콩과는 전혀 다르고 참 소중한 의미가 되어버렸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