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벤딩 디 아크’의 주인공, 인류학자이자 의사로서 개도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한 김용(왼쪽부터), 오펠리아 달, 폴 파머 (사진=다음 영화)

[뉴스인] 이다영 = 최근 '벤딩 디 아크(Bending the Arc)'라는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았다. 보건 분야 국제 비정부기구(NGO)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의 설립 배경과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이티, 르완다 등 개발도상국 10여개 국가에서 결핵, 에이즈, 말라리아 등 질병퇴치를 위해 활동하는 의료전문기관인데,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지역 내 주민들을 활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에는 병원을 세우고 의료활동을 해도 질병은 치료되지 않았고 오히려 확산될까봐 우려되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그들은 지역 주민들을 헬스워커(Health Worker)로 세웠다. 헬스워커들은 집집마다 돌면서 환자들에게 약 복용을 독려하고 말 상대를 해주며 환자들이 병에서 이겨내도록 돕는 '주인공들'이라고 했다.

개발도상국 주민들을 상대로 교육 사업을 하다 보니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 참여해 삶이 변하도록 힘을 주는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임파워먼트(Empowerment)라고도 한다. 유구한 역사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시골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할 때는 이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부르키나파소에서 문해교육을 받는 여성들 (사진=EWB)

전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교육을 해주겠다고, 우물을 파주겠다고, 기술을 전해주겠다고 들어오는 원조들은 주민들 입장에서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시켜주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해외 개발도상국에서 실시하는 교육 사업에는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교육을 받고 싶고, 스스로 변화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활동이 꼭 필요하다. 외부인이 들어와서 '교육 받으셔야 한다'고 하는 것보다 이웃 주민들이 '교육 받으니 이런 게 좋더라' 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지 않겠는가.

부르키나파소 시골 마을에서 진행된 연극활동 (사진=EWB)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를 본 뒤 부르키나파소에서 실시했던 연극 활동이 떠올랐다. 이 연극 사업은 광명시평생학습원(양기대 시장) 지원을 받아 (사)국경없는교육가회가 부르키나파소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업이다.

가난한 부르키나파소의 시골 성인 여성들에게 글자교육이라도 하기 위해 먼저 연극을 보여주었다. 연극에선 수업을 들으러 나갔던 여인과 집안일만 했던 여인을 비교하는 내용, 배운 것을 실천한 여인과 그렇지 못한 여인의 변화된 모습을 대비해 우스꽝스럽게 보여주곤 했다.

여자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고 싶어도 마을 족장부터 시작해 시아버지나 남편 등 마을 남자 어르신의 동의가 없으면 배움은 그저 다른 동네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여차저차 글자를 배우겠다는 아주머니들을 불러 모아도 남편이 찾는다, 가족 행사가 있다, 아이 돌볼 사람이 없다는 등 여러 핑계로 아주머니들 얼굴 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수업시간에 배운 셈하기, 가축 잘 기르기, 가족들 질병 예방하기와 같은 주제들도 금방 잊어버려 다음 해에 같은 진도를 또 나가야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연극을 보기 위해 의자와 책상을 끌어와 앉아 있는 주민들 (사진=EWB)

연극팀이 마을에 들어와서 공터에 막을 치고 있노라면 마을 주민들은 축제라도 벌어진 양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의자까지 집에서 들고 와서 시끌벅적 자리부터 잡고 앉는다. 여성들 수업에 반대하는 남편이 욕을 먹는 장면을 보고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한바탕 웃는다. 아이가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 보건소로 뛰어가는 장면에서는 진지하게 응원한다. 가족계획을 세우지 않고 아이를 계속 낳자고 하는 남편을 보고는 서로 부끄러움에 낄낄 웃는다.

연극을 한번이라도 보고나면 마을 분위기가 달라진다. 아내가 글을 배우느라 집을 비워도 잔소리 하지 않는다.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도록 모기장에도 신경을 쓴다. 에이즈에 감염되어 마을에서 낙인이 찍혔던 여성들도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을 해준다.

EWB의 교육 참가자인 토니 라모우(Toni Lamou)라는 에이즈센터의 여성은 연극을 보고 난 후 “에이즈라는 질병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연극을 보고나서 용기를 얻었어요. 이웃들도 연극을 같이 봤어요. 이제는 숨지 않아도 되고 마을 사람들은 저를 신뢰해요”라고 말했다.

함께 웃으며 재미있게 연극을 관람하는 남자주민들 (사진=EWB)

또 보보디울라소에 사는 사가레 사라타(Sagare Sarata)라는 아주머니는 “글을 배우고 나니 집에 날아오는 고지서를 읽을 수 있게 됐고 옆집 아주머니의 것도 읽어줬다. 그 친구도 수업을 듣고 싶어 했다. 배움엔 나이가 없다. 삶에 새로 눈을 뜬 것 같다”고 했다.

글을 평생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글을 배우셔야 한다고, 셈을 배우시면 이런 것이 좋다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나랑 평생 비슷하게 살던 이웃집 아줌마가 글을 배우고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배운 글을 활용하여 돈을 벌고 작성한 여성들의 가계부 (사진=EWB)

부르키나파소 농촌 마을에서 연극 활동은 이렇듯 마을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혼자서는 바쁜 낮 시간에 집안의 어머니가 수업 들으러 가는 것이 눈치 보였어도 주민들이 도와주니 교육도 받고 돈도 더 벌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봤던 환자들이 혼자서는 약 챙겨먹는 것을 못해도 주민들이 도와주니 무사히 치료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곳은 아직도 공동체가 희망이다. 아직 우리네 사회처럼 공동체 정신을 많이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이고 부럽다.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전하면서 집중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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