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84세 최고령 초등학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키마니 닝아 마루게 할아버지 (사진=www.thefirstgrader-themovie.com)

[뉴스인] 박수정 = “새로운 정부가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은 출생증명서만 들고 가면 된답니다. 이렇게 공약을 잘 지키는 정부라니, 정말 황당하죠?”

라디오 DJ가 2003년 케냐 정부가 발표한 ‘모두를 위한 무상교육’ 실시 정책에 대해 말한다. 어린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출생증명서를 들고 학교를 향해 뛰어간다. 작은 학교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미어터진다. 발 디딜 곳 없는 학교 담장 밖으로 지팡이를 짚고 한 노인이 기다리고 있다. 84세 노인 키마니 마루게(Kimani Maruge) 씨다.

마루게 할아버지는 정부가 분명 ‘모두’를 위한 무상교육을 한다고 했다며 자신도 케냐 국민으로서 꼭 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학교 선생님들은 난처해하면서 교복도 없고 교재와 연필이 있어야 하는 규칙이 충족되지 못하므로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마루게 씨는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교복이 될 만한 옷을 구해서 기워 입고 보자기로 싼 책가방을 메고 다시 학교로 향한다. 할아버지의 열정에 교장인 제인 선생님은 입학을 허락한다.

84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마루게 할아버지는 실제 최고령 초등학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지난 2011년 ‘퍼스트 그레이더(The First Grader)’라는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책상도 없어 바닥에 앉아 공부하는 어린 아이들 틈 속에서 공부하는 마루게씨 (사진=www.thefirstgrader-themovie.com)

◇ “너희는 미래의 희망이고, 우리는 지금의 현실이지!”

마루게 씨는 어렵사리 학교에 입학하여 어린 학생들과 수업을 받게 되었지만, 학교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케냐국민의 세금으로 실시하는 무상교육이므로 다 늙은 노인에게까지 세금을 써가며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이 많은데 굳이 다 늙은 노인에게 ‘배움’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동네 사람들로부터 놀림뿐 아니라 협박까지 당한다. 마루게 씨의 입학을 허락한 교장 제인은 다른 지역으로 고의적 발령이 나기도 한다.

정말 84세의 노인에게 ‘배움’은 아무 쓸모없는 일일까? 교육은 자라나는 새싹이자 미래의 희망인 어린 학령기 아동에게만 가치 있을까?

동네 주민들의 놀림과 협박 속에서도 글을 배우기 위한 열정은 꺼지지 않는다. (사진=www.thefirstgrader-themovie.com)

◇ 대한민국 문맹 인구 264만 명, 전쟁과 산업화 희생 세대

84세에 글을 처음 배우게 된 마루게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비단 아프리카 케냐에서만 일어나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마루게도 많다. 한국의 성인 문맹자는 약 264만 명에 달하며 의무교육(중등 단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약 570만 명으로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광명시에서 제공하는 성인 문해교육 프로그램, 희망의 백일장 대회에 출품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작품 (사진=광명시 평생학습원 페이스북)

문제는 이러한 문맹 인구가 특정 성별과 연령층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개 50~80대 여성들에 해당한다.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비문해는 전쟁과 산업화 과정에 희생되어 교육 권리를 박탈당한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문해는 개인이 원인이라기보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경제적 약자로서 소외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이러한 이유로 문맹인 사람들이 상당히 낮은 자존감으로,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문맹인 사실을 숨기고 하루하루 불안하고 위축된 태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성인 대상 문해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아산도서관 홈페이지)

사랑에는 국경이 없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한국에서도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노년층 문맹에 대한 교육 열기가 뜨겁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가 소개되며 화제가 되고 시집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한국과 케냐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비문해 인구가 배움의 기쁨을 알고 조금 더 자신 있게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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