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본 친숙한 로고 (사진=EWB)

[뉴스인] 민선홍 = 선선한 바람과 화창한 날씨가 반갑던 봄이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푹푹 찌는 무더위가 찾아왔다. 습도 때문인지 아프리카보다 몇 배는 더 덥게 느껴지는 한국의 여름을 어떻게 또 날까 하는 고민을 하며 새 여름옷을 장만하기 위해 대형 의류매장을 찾았다.

옷이 맞는지 입어보기 위해 피팅룸에서 기다리던 나는 한 광고를 목격했다. 바로 ‘리사이클(recycle)’ 이벤트였다. 입지 않는 헌옷을 매장으로 가져오면 이를 분류하여 옷을 필요로 하는 전 세계 이웃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자원 절약과 물자 후원, 일거양득의 얼마나 좋은 이벤트인가! 하지만 이 좋은 이벤트를 보고도 내 마음 한구석은 어딘가 불편했다. 과연 이 선한 의도가 가져온 뜻밖의 재앙에 대해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헌옷과 신발을 팔고 있는 모습 (사진=류광현)

지난해 아프리카로 출장을 다녀오면서 아프리카에 대해 갖고 있던 많은 이미지와 선입견들은 깨지게 됐지만, 상상했던 것과 똑같은 이미지도 있었다. 바로 그들의 옷이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아주 익숙한 옷들이 눈에 띈다. 전 세계 축구팀이 다 모였는지 온갖 유니폼들의 향연부터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볼 법한 다소 촌스러운 티셔츠들, 심지어는 ㅇㅇ대학 과잠바부터 삼성 티셔츠까지.

시장으로 들어가면 눈이 더 휘둥그레진다. 헌옷수거함이나 부모님의 앨범에서 볼 법한 낯설면서도 익숙한 옷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물론 대부분 옷의 상태는 깨끗하고 좋은 편이다. 하지만 낯선 듯 익숙한 디자인 때문일까? 그들의 옷이라기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옷, 헌옷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198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이 보호주의 경제정책을 폐기하면서 아프리카 시장에 각국 중고 의류들이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사업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비영리단체나 각 지자체에서 선한 의도로 후원한 물품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아프리카 헌옷’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기만 해도 수십 개의 기사들이 검색된다. 헌옷 기부를 통해 아프리카에 희망을 선물한다는 기사, 신발 한 켤레 구매할 때마다 개발도상국 아동에게 신발이 기부되는 유명 신발 브랜드의 ‘one for one’ 캠페인 등 각종 훈훈한 소식들이 넘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프리카 의류산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구 또는 아시아에서 들여온 중고의류들은 현지에서 생산한 옷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며 질도 나쁘지 않다. 그야말로 가성비가 좋은 셈이다.

실례로 싱크 프로그레스(thinkprogress)에 따르면 케냐의 경우, 중고의류의 평균 가격이 현지에서 생산한 새 옷 가격의 5~10% 정도라고 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황도 비슷한 점을 고려해봤을 때, 물밀듯이 들어오는 중고의류와의 경쟁에서 현지 의류산업이 도저히 생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지난해 3월 우간다와 케냐, 탄자니아, 부룬디, 르완다로 구성된 동아프리카 공동체(EAC)가 2019년까지 중고의류와 신발 수입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부유국들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의존을 끊어 자국 제조업을 부흥시키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영리단체 활동가 손드라 시멜페니크(Saundra Schimmelphennig)는 “선한 의도로는 충분하지 않다(Good Intentions are not enough)”고 지적한다.

가령, 나는 선한 의도로 헌옷을 기부하거나 물건을 사더라도 나의 구매가 기부로 이어지는 ‘BOGO(Buy One Give One)’ 제품을 살 수 있다. 나로 인해 지구촌 이웃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말이다. 하지만 그 선한 의도로 인해 현지 제조업이 위협을 받게 되고 일자리와 경제까지 타격을 입게 될 수도 있다. 1980년대부터 저렴한 중고제품과의 싸움으로 아직 그들의 제조업은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고의류를 판매하고 있는 우간다 시장 (사진=New Vision)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중고의류나 후원을 받지 않는 것이 답일까? 사실 개발도상국일수록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하다. 국민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열악하고 대부분이 중고의류를 구매하는데, 그들에게 이를 금지시키는 것이 과연 옳을까. 중고의류 판매상들의 생계는? 또한 아프리카로 중고의류를 수출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은? 이제 중고의류를 보내지 않는다면 그 많은 중고의류들의 처리는? 그렇다. 이건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찌 보면 ‘트렌드’라는 이름하에 빠르게 소비되고 교체되는 우리의 패스트 패션으로 인해 애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도는 선했을지 몰라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봤을 땐, 우리가 입지 않는 옷을 결국 그들에게 떠넘긴 것이고 그로 인해 그들은 자립할 힘을 키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난 글에서 얘기했던 빈곤포르노그래피도 그렇고 이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언제나 딜레마와 고민의 연속인 것 같다. 하긴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고 그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 하나는 알 것 같다. 나의 관점에서 선한 의도일지라도 상대에겐 그것이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내’가 아닌 ‘상대’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BOGO제품의 역풍에 대한 인식이 퍼진 후, 유명 신발 브랜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무조건적 기부가 아닌 현지에 제조공장을 설립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변경했으니 말이다.

이 변하지 않을 진리를 마음에 품고 끝없이 고민하다 보면 모두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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