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방에 들어온 아주 작은 도마뱀. 나흘 정도 같이 살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진=김현지)

[뉴스인] 김현지 = 해외에서 장기 체류하다 보면 처음엔 불편했던 것이 어느덧 익숙해지기도 하고, 생활 습관이 바뀌기도 한다. 부르키나파소 3개월차인데도 아직 달라진 환경에 적응중인 ‘아프리카 초보’지만, 벌써부터 작은 변화들을 실감하며 “아프리카 사람 다 되었네” 싶은 순간이 있으니, 바로 이럴 때다.

◇ 방에서 도마뱀을 발견해도 놀라지 않는다

아프리카 어딜 가든 도마뱀을 쉽게 볼 수 있다. 주로 밖에서 서식하는 종과 실내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담한 종,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한국에서라면 방에 들어온 벌레 한 마리에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손바닥만한 도마뱀이 커튼 뒤에서 불쑥 나타나도 별로 놀라지 않게 됐다.

오히려 인기척에 구석으로 후다닥 숨는 모습, 배고프면 ‘꼬록똑똑’ 하는 특이한 소리를 내는 것이 은근히 귀엽게까지 느껴지니, 아프리카 생활에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도마뱀의 가장 큰 단점은 벽에 대변을 본다는 것이지만, 결정적으로 사람이 없는 동안 방에 들어온 모기, 파리를 싹 없애주는 고마운 역할을 하니 아프리카에선 참 괜찮은 애완동물이다.

◇ 정전과 단수는 일상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꽤나 긴 정전이 다녀갔다. 사실은 하루에 한번도 정전이 없으면 “왜 오늘 정전이 없지? 다음번엔 또 얼마나 오래 끊기려 그러나?” 하는 불안한 느낌마저 든다. 다행히 회사는 이럴 때를 대비해 비상 전력기가 있어 업무에 큰 지장이 없지만, 퇴근 후 정전이 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아직 저녁시간이라면 얼른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동네 한바퀴를 돈다거나, 에어컨이 나오는 식당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한밤중이라면 찌는듯한 더위와 어둠속에서 억지로 잠을 청해보는 수밖에 없다. 단수는 정전만큼 자주 오지는 않지만 불편함은 더 크기 때문에 욕실 한구석 페트병에 미리 잔뜩 물을 받아두는 것은 필수다.

◇ 인터넷 없는 삶에 익숙해진다

정전이 잦다보니 집에서도 와이파이가 안 될 때가 많고, 출장지에서도 호텔 와이파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고장이거나 신호가 매우 약할 때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데이터 USB를 장만해 가지고 다녔건만, 이 역시 자꾸 고장이 나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터넷 없는 삶에 자동적으로 익숙해지는데, 불편한 점도 많지만 의외로 좋은 점이 하나 있다. ‘강제 휴식’을 갖게 된다는 것. 퇴근 후 인터넷을 즐기며 친구들과 수다떨거나 SNS를 확인하는 것도 휴식이라 할 수 있지만, 혼자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것 역시 일상 속에 쉼표를 찍는 방법이라는 걸 배운다.

◇ 아프리카 억양으로 말한다

불어를 쓸 때 발음과 말투가 점점 아프리카화(africanized)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오랜만에 텔레비전에서 프랑스 표준 불어를 들으면 어딘지 낯설고 간지러운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전화기 넘어 파트너 기관 동료가 불어로 인사하는 걸 듣던 어머니가 "지금 들리는 건 무슨 언어냐"라고 물을 만큼 이곳 불어는 친숙하고 구수한 사투리같은 느낌이다.

처음 부르키나파소에 왔을땐 이곳 억양을 잘 알아듣지 못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비슷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다. 여기에 자주 쓰이는 현지어 몇 마디까지 배워,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현지 스타일의 인사를 나누는 내 모습이 어쩐지 싫지 않다.

즐거운 점심시간, 든든한 소스밥 한끼. (사진=김현지)

◇ 배고플 때 현지 음식을 먼저 떠올린다

한국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오늘 잔치국수 먹을까? 부대찌게 먹을까?” 했던 것처럼 여기서도 배가 고프면 “오늘은 숨발라(녜레라는 열매의 씨앗으로 만든 청국장과 비슷한 현지 음식) 먹을까, 또(소스와 곁들여 먹는 옥수수 전분과 밀가루를 불려 만든 푸딩 같은 음식)를 먹을까?” 고민하며 입에 군침이 도는 걸 발견한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이 전혀 그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일단 배가 고프면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음식은 값도 싸고 입에도 제법 잘 맞는 현지 음식이다. 이곳 생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한국 돈으로 1000~2000원 정도면 풍성한 한끼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부르키나파소를 대표하는 생수 ‘Lafi’. 현지어인 모래어로 ‘건강’이라는 뜻이다. (사진=김현지)

◇ 1.5L 페트병과 선글라스를 휴대한다

타는 듯한 더위의 아프리카에서 어딜 가든 반드시 필요한 것은 휴대폰도 선크림도 아니요, ‘물’과 ‘선글라스’이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는 만큼 음수량도 늘기에, 한국에서 들고 다니던 작은 물병은 역부족이다.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어딜 가나 묵직한 1.5 L페트병을  휴대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또한 선글라스는 강렬한 햇빛 때문에도 착용하지만, 사막화가 심한 이곳의 따가운 모래 바람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 열이 나면 감기보단 말라리아를 의심한다

여기서 제일 흔한 병이면서도 치료시기를 놓치면 위험해질 수 있는 질병이 열대열 말라리아다. 말라리아 감염은 모기를 매개로 말라리아 원충에 의해 일어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예방약이 있긴 하지만 간에도 지갑에도 무리가 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장기 체류자는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약을 먹는 방법을 택한다.

현지에서 당장 병원에 가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근육통이 있고 고열이 날 때는 일단 몸살보다 말라리아를 먼저 의심하고 약을 먹는 편이 낫다. 출장지에서 말라리아 증세가 나타나 즉시 약을 즉시 먹고 비교적 빠르게 회복한 경험이 있다.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다면, 한번 시작한 말라리아 약은 꼭 정해진 용량을 끝까지 다 먹어서 몸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말라리아균이 내성을 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색색의 다양한 천으로 하나뿐인 옷을 지어 입고 다니는 아프리카 여인들. (사진=김현지)

◇ 숨겨왔던 패션 감각이 깨어난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마련이다. 화장과 패션에 관심이 있어 꾸미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적당히 유행에 순응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는 스타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접 고른 천으로 자신만의 맞춤옷을 지어 입는 아프리카에서는 이런 고민이 줄어든다. 나이, 키, 몸매에 무관하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라면 소심한 필자도 조금은 과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냈을 화려한 맞춤옷을 입고, 색상이 너무 튀는 것 같아 아껴만 두었던 립스틱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이곳에서 배운 자신감을 안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나만의 색깔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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