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정말 ‘노 프라블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잘 해보자고 손을 잡고 약속도 해본다. (사진=박수정)

[뉴스인] 박수정 = “오늘 함께 진행한 사업 모니터링에 대한 보고서를 일주일 안에 정리해 보내주세요. 가능할까요?” “당연하지, 노 프라블럼!”

“오후 두 시까지 은행 업무를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지, 노 프라블럼!”

여러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하고 현지의 직원, 관리자들과 일하면서 듣는 말 중 가장 많이 그리고 쉽게 들어온 말 중 하나일 것이다. 더군다나 초롱초롱 맑은 눈과 흥 넘치고 파워풀한 손 악수와 함께 듣는다면, 그 말에 홀리지 않을 자가 없다.

나름 ‘순수’했던 개발협력 초년생이었던 때엔 문제 없다는 파트너의 “No problem!”을 곧이곧대로 믿고 약속한 마감기한까지 열심히 기다렸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 뒤에는 약속대로 돌아온 것이 없음에 대한 당혹감과 난감함, 그리고 마감기한을 코앞에 두고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던 절망감이었다.

한껏 인상도 찡그려보고 목소리도 깔면서 분위기를 잡아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유쾌하다. (사진=박수정)

사실 정말 답답할 때는 상대방이 잘못해서 내가 따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노 프라블럼’이 나올 때이다. 분명 한 달 전부터 반드시 오늘까지 정해진 문서를 준비해 가져와야만 한다고 적어도 10번은 넘게 말하고 심지어 전날 확인 전화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가져오지 않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내 상식 선에서 가져오지 않은 당사자는 미안한 입장으로 먼저 왜 가져오지 못했는지 구구절절 변명이라도 해가며 미안함을 표시하고 빨리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하고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유쾌하다. ‘노 프라블럼’이다. 아닌데? 이게 지금 ‘프라블럼’인데? 지금 이 상황이 엄청난 문제라구! 이게 ‘노 프라블럼’이면 도대체 무엇이 ‘프라블럼’인거지? 정말이지 혈압이 올라 머리를 싸매고 드러눕고 싶어지는 심정이다.

이런 상황들을 조금 겪고 나름 익숙해져간다 싶을 때에는 괜히 조급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상대방을 졸라대고 성가시게 여겨지겠다 싶을 만큼 확인에 확인을 했다. 또 어떤 때는 목소리도 크게 키우고 냉정한 표정을 보이기도 해봤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노 프라블럼’인 상황에 ‘프라블럼’이라며 열이 받아 씩씩대면서 항의하는 사람은 한국사람뿐이라는 것이다.

큰 길가에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엎어져도 ‘노 프라블럼’이다. 곧바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나서서 돕는다. (사진=박수정)

정말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 중 하나인 ‘라이언 킹(Lion King)’에 귀여운 콤비, 티몬과 품바가 ‘하쿠나 마타타’라는 노래를 부르며 실의에 빠진 심바에게 힘을 실어준다. 하쿠나 마타타는 스와힐리어로 영화에서 쓰인 표현 그대로 하자면 “근심 걱정 모두 떨쳐버려”라는 의미고 영어로 번역하면 “No worries”이다.

어린 시절 엉덩이 춤이 절로 나던 이 말이 내가 요새 경험하는 ‘노 프라블럼’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나는 작은 것 하나 하나에 반응하며 화내고 소스라치는 잔가지 나무와 같이 느껴진다. 느긋하리만큼 여유롭고 뻔뻔하리만큼 유쾌하고 당당한 이들의 ‘노프라블럼’은 ‘그 정도가 무슨 문제라고’ 하는 마음을 가진 흔들리지 않는 큰 나무같지는 않은가 싶기도 하고.

일하며 부딪혔던 많은 ‘노 프라블럼’들에 나도 답답해하며 속앓이를 많이 했지만, 가끔은 뻔히 문제가 될 걸 알면서도 속아 넘어가주기도 하고 유연하게 웃으며 대처하기도 해본다. 일상생활 깊은 곳까지 자리 잡은 하쿠나 마타타 ‘노 프라블럼’ 정신은 종종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된다.

때로는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노 프라블럼’이라 연신 외쳐대며 나를 위한 희생과 사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업무 환경에서 ‘노 프라블럼’이 개선되길 바라는 나의 욕심은 남아있지만, 가끔은 나도 이들의 유쾌한 ‘노 프라블럼’으로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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