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교육가회가 바라본 아프리카

*아프리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굶주림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검은 대륙, 혹은 해외여행기를 담은 TV 프로그램 속 이국적 모습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교육개발협력사업을 수행해온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ors Without Borders) 구성원들이 몸소 겪고 느낀 다채로운 아프리카 이야기를 뉴스인에서 연재합니다. EWB는 지난 2007년 개발도상국 교육권 확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단체입니다. -편집자주

선한 미소를 지닌 APENEF 사무실 인턴(오른쪽)과 함께 (사진=양진모)

[뉴스인] 양진모 = ‘N포세대’, ‘흙수저’, ‘헬조선’. 이 절망적인 세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나의 20대 초중반을 관통하는 키워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서점에서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방황해도 괜찮아’ 등 청춘을 위로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즐비했다. 기존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기엔 취업시장이 어렵고, 새 방식으로 삶을 창조해내기엔 낯설고 버겁다. 어느 시대나 나름의 어려움이 있지만, 2010년 이후 우리나라 청춘들이 향유하는 시대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기 그지없다.

‘아프리카 이야기’에서 왜 뜬금없이 ‘헬조선 이야기’를 꺼냈을까. 나는 이곳 부르키나파소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경험보다는 이곳에서 느낀 원초적인 인상이 전부다. ‘헬조선인’ 관점으로 세상을 봐온 나에게 부르키나파소에 대한 인상은 신선한 충격에 가깝다. 헬조선의 정반대 모습을 지구 반대편 서아프리카 한 구석에서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가두구 시내 (사진=양진모)

하지만 오해는 없길 바란다. 이곳은 결코 지상천국이 아니다. 대중교통이 전무한 와가두구에서 어딘가로 이동하려면 매번 바가지 씌우는 택시기사들과 흥정을 해야 한다. 또 어느 집이나 바퀴벌레, 모기 등 벌레들이 득실댄다. 나의 하루 일과는 살충제 ‘바이오킬’을 집안 사방에 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음식점이나 위생상태는 심히 의심되고 과일도 세제로 씻어먹어야 한다. 그뿐이랴. 흙먼지가 기관지를 괴롭히고, 45도에 육박하는 더위는 피부를 자극한다. 지난 6일 동안 머리를 채운 생각은 ‘앞으로 고생이겠구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어디든 사람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다. 청국장처럼 깊고 오묘한 냄새를 내는 ‘숨발라’처럼 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의 삶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향기가 있는 듯하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식 없는 미소로 ‘Bonne Arrivée’(잘 오셨습니다) 외치며 나를 맞아주는 공항안내요원. 거리를 지날 때면, 외국인인데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크게 ‘Bonjour’(봉쥬르, 안녕) 인사해주는 해맑은 사람들.

퇴근 시간이 되면 지옥철을 뚫고 어딘가로 달려가기 바쁜 우리와 달리, 직장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거나 커피 한잔 하는 여유로운 사람들. 현지음식이 조금 먹어보고 싶다고 하니, 아예 식사 한 끼를 대뜸 차려주는 인심 좋은 사람들. 물질적으로 가난한 나라일지는 몰라도, 행복의 기운만큼은 넉넉한 나라다.

우리나라 학군단 옷을 입은 동네 맛집 아저씨 (사진=양진모)

그렇다면 이 ‘행복한 지옥’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어떻게 바라볼까? 이들에게 한국은 ‘기술’과 ‘부’로 대변되는 선진국이었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헬’이라고 일컫는 대한민국은 이곳 사람들에겐 지향해야 할 하나의 천국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모순을 생각해보니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과 부란 무엇인가? 마음의 넉넉함인가, 물질적 풍요인가? 개발협력을 하는 사람으로서 삶의 질 향상과 개발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오히려 우리 관점으로 이들의 개발을 접근했다가 이들의 정서적 풍요를 다치게 하진 않을까?

무수한 별들이 빛나는 와가두구의 고요한 밤, 행복한 지옥에 착지한 불행한 천국의 청년은 오늘도 뜨거운 고민들을 품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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